그라트 적정기술센터 (GrAT. Center for Appropriate Technology)
적정한 자본과 노력으로 비교적 간단한 원리를 활용하여 사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기능과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이 적정기술이다. 자본 집약적이고 대규모 생산 설비를 이용해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하이테크 (High-tech)와 비교해 노동 집약적이고 소규모로 운용되며, 주로 단품 기술로 구현되기 때문에 적정기술은 로우테크 (Low-tech)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 기술에 높고 낮음(귀천, 貴賤)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테크가 선진국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적정기술 역시 개발도상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자연 법칙과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기기나 도구, 또는 체계를 생각하고 제작할 수 있다. 기술이 사용되는 장소, 환경, 시기, 재료, 문화, 규모, 효과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최대한 ‘적정’한 균형을 이루는 적정기술은 오류, 사고, 고장이 발생했을 때 문제의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며, 피해를 회복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원자로 붕괴 사고의 피해, 미세 플라스틱의 해양 오염 정도를 생각해보면 ‘적정하지 못한’ 기술의 이면에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라트 (GrAT) 적정기술센터 (이하 그라트)는 1986년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 (TU Wien)에서 설립되었다. 수요자의 필요(니즈)를 적절히 만족시키는 기술, 공동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기술, 환경과 사회적 조건들 속에서 가능한 균형을 이루는 기술을 연구하고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기술 수요에 대한 원천적 분석, 기획 및 설계, 구현, 모니터링을 아우르는 전반적 프로세스를 수행한다. 또한 학생 및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가 실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식을 전수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 지방자치단체 및 정부기관에 혁신적이고도 실용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1996년 로베어트 비머 (Dr. Robert Wimmer) 박사가 센터장으로 자리한 후, 수년간의 연구 끝에 뵈하임키르헨(Böheimkirchen)에 약 7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분원을 열고 2005년 S-House를 완성하였다. S-House는 그라트의 주력 분야인 지속가능한 건축 설계 및 패시브 하우스 에너지 시스템이 결합된 결과물일 뿐 아니라 볏단, 흙, 목재, 식물성 섬유소재 등 친환경 소재에 대한 오랜 연구 결과와 ‘Treeplast®’라는 볏단 고정용 천연소재 나사못 등 새로운 기술을 시연하는 장으로 활용된다.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 특히 주변 농가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볏짚을 활용한 단열 방식 등은 S-House가 선진국형 적정기술 사례임을 보여준다. S-House의 업그레이드 및 확장형 주거 건물 3개동을 포함하는 Life Cycle Habitation (LCH) 사업은, 자재 선택에서부터 시공, 사용, 유지, 폐기/재활용 단계에 이르는 전주기 동안 자원과 에너지의 사용 및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으로 하며, 2021년 완공 예정이다.
그림 1: 그라트 연구소 분원인 S-House와 건설 현장. 지역 농업 부산물인 볏단과 흙, 목재를 주원료로 한다.
그림 2: 볏단 고정용으로 개발된 Treeplast 나사. 목재 성분의 분해 및 재조합으로 구성됨.
그림 3: LCH 프로젝트 조감도. 2021년 완공 예정.
그라트는 유럽연합 (EU), UN, 오스트리아 ODA기관인 Austria Development Agency (ADA), 연구 진흥 기관 (FFG) 및 기타 공공 또는 민간 조직과 같은 다양한 국내 및 국제기관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특히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는 EU SWITCH-Asia 프로그램을 통해 통합적 기술 및 지식 이전 사업을 수행한다. 이에, 수혜국 기관들의 역량 강화 뿐 아니라 대상 국가의 정책 마련이나 중소기업 및 영세 사업자들을 위한 재정 지원 프로그램과의 연계 등을 포함한다.
그라트의 대표적인 국제기술원조 프로젝트로 2009년부터 약 10년 동안 진행된 1,2차 제로 탄소 리조트 (Zero Carbon Resorts, ZCR) 사업은 필리핀(1,2차)과 태국(2차)의 500개 이상의 리조트, 호텔, 게스트 하우스 등 숙박 시설 및 레스토랑 등의 관광 산업 시설들을 친환경적으로 탈바꿈하는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디젤발전기에 의존하고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던 업체들이 ZCR 프로젝트의 3R (Reduce-Replace-Redesign) 전략에 따라 우선 에너지와 자원 소비를 줄이고 (Reduce) 거기에서 절감된 비용을 노후한 설비를 교체(Replace)하는데에 투자했다. 나아가, 그라트는 대상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를 주 재료로 하고, 태양열과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도입(Redesign)한 Zero Carbon Cottage를 완성하였다. ZCR 프로젝트는 UN Global Forum on Human Settlements에서 ‘Global Human Settlements Award on Planning and Design’을 수상하였다. 또한 필리핀 관광부 (Department of Tourism)과의 협력으로 필리핀 지속가능 관광인증체계인 ANAHAW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림 4:필리핀 팔라완에 세워진 Zero Carbon Cottage.
그림 5: Global Human Settlements수상
그림 6: ZCR 프로젝트 컨퍼런스 및 ANAHAW 시상식
이후 네팔과 부탄에서 농산품가공업과 관광업체를 대상으로 유사한 내용의 Sustainable & Efficient Industrial Development (SEID) 프로젝트를 4년 동안 수행한데에 이어 2020년 5월부터는 부탄에서 Sustainable Hospitality Industry Inclusive of Native Entrepreneurs (SHINE)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SHINE 프로젝트는 영세한 자급 농업자와 가내 공업자들을 관광산업의 가치생산고리로 영입하고 생산 품질과 양을 확대함과 동시에 지역의 특색 있는 전통적 문화를 보존하고 알림으로써 부탄 내 지역 간 경제발전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U SWITCH-Asia 사업을 통해 그라트는 미화 50달러 이하의 비용으로 제작된 태양열 온수기, 2중 연소 화로, 바이오매스 기반 고성능 화로, 집진기 등의 단품 기술들을 개발하였으며 제로 탄소 개념을 지역에 확산하였다.
그림 7: 태양열 온수기 (좌)와 2중 연소 화로 (우)
그림 8: SEID 프로젝트의 컨설턴트 교육 프로그램 참가자들 (네팔, 부탄)
그라트에는 한국인 강명주 박사가 15년 동안 부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쉐어링, 디지털화 등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의 한 형태로 알려진 제품 서비사이징(servicising)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 설계 기법을 개발하였으며, 한국생산기술원, 디자인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국 기업 대상 교육을 수차례 실시하였다.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나눔과 기술 등과 교류하고 있으며 향후 보다 활발한 협력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림 9: S-House에서 개최된 그린 비즈니스 설계 교육 과정에 참가한 한국 기업 제품 개발자들
글｜그라트 적정기술센터 (GrAT. Center for Appropriate Technology) 강명주 박사
